Novel/단편

[야마타이 ←다이] 죄

ㅁㅣ리내 2015. 8. 16. 00:37



 







드르륵, 쾅ㅡ!!


 "타이치 선배!!!!"
 "오우, 오랜만이네 다이스케."


 힘없이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던 갈색을 지닌 두 눈동자가 갑자기 들려온 커다란 소리에 흠칫 놀라 흔들리며 소리가 들린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침대 위에 앉아있던 타이치는 문 앞에서 헉헉 거리며 급한 호흡을 내쉬고 있는 자신의 후배의 모습은 보았을때 느낀점. 와, 심각해. 소식을 듣고 이곳까지 전력질주라도 해 온건지 머리는 산발이고 땀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다이스케는 그대로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울먹거리며 제게 안부를 물었다. 녀석, 사내자식이 그렇게 눈물이 많아서야. 금방이라도 돌진해올 거 같은 후배를 달래주기 위해 최대한 그에게 늘 보여주었듯이, 평소처럼 웃어보이며 답변해주었다. 하나씩 질문해, 좀. 숨 넘어가겠다 야..


 "많이 다친거에요? 얼마나 다치신거면 선배가 입원까지 해요?! 갑자기 쓰러지셨다면서요! 다행히 옆에 타케루 그 녀석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였지, 큰 일 날 뻔했잖아요!! 의사가 뭐라고해요?! 히카리짱은 알고 있는 거죠? 아, 아니지 부모님께 연락은ㅡ."
 "다이스케 진정하라니깐...."
 "진정이 되겠어요 지금?!"


 어쭈, 이게 선배한테. 찌릿. 가뜩이나 머리도 아팠는데 계속되는 큰소리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써보였는지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타이치를 뒤늦게 눈치채고 멈칫, 말을 중간에 끊은 다이스케는 조금 흥분해있는 제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허나 여전히 놀란마음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결론은, 정말 괜찮은거에요?


 "괜찮으니깐 너무 오버하지마. 머리 아프니깐 소리도 좀 줄여. 여기 병원이야."
 "죄송해요..."


 지대로는 걱정되는 마음에 그런거였을텐데. 내가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에 하아, 한숨을 내밷는 타이치는 방금전까지만 해도 조용해서 편안했는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하자 두통이 느껴지는 부근을 움켜잡아보였다. 다이스케가 그런 그의 모습에 또다시 놀라 말까지 더듬으며 의사를 불러오겠다는 그가 밖으로 나갈려는걸 타이치는 겨우 말렸다. 이래서 타케루한테 다른 얘들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한거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그러질 못한 듯 싶었다.

 그렇다면 그 녀석도, 알고 있을까. 문뜩 제 머릿속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또는 익숙하게 떠오르는 한사람에 타이치는 풋 웃어보이다가도 금새 미소를 지우고는 그럴리가. 하고 단정지어버렸다. 그러고보니 이제 몇일 안남았네. 밴드 무대가 코 앞이라 정신이 없을 제 친구를 떠올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모를일 없는 타케루도 이미 알고 있을 터. 아마 바쁜 연습에 지쳐있을 제 형에게는 쉽게 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타이치는 쉽게 예상했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면서도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는 타이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음에도 그가 모른다는 생각에 몰려오는 서운함과 섭섭함. 급하게 달려와준 다이스케에게는 미안하지만 제일 먼저 찾아와준 사람이 제 앞에 서있는 귀여운 후배가 아니라 오랜시간 그 무더운 여름날 힘겨웠던 특별한 모험을 함께 겪어온 너였다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그나저나..


 "으..."

 

지끈지끈. 또다시 느껴지는 아픔에 표정을 구겨보이는 타이치는 저도 모르게 내밷는 신음소리도 알지못한 채 서운함을 뒤로하고 점점 강해지는 두통에 눈물이 핑돌아야만 했다.


 "으으...깨질 거 같아..."
 "서, 선배? 으악!"
 "?!"


 갑자기 안색이 안 좋아지는 타이치를 보고 놀라 당황해하는 다이스케가 침대쪽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 바로 앞에서 발이 엉켜 허우적거리며 으악 소리에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침대 위에 앉아있던 타이치 위로 넘어져 버렸다. 반사적으로 두 팔을 뻗은 탓에 침대에 완전히 엎어지는 꼴은 면했지만 다이스케는 쾅하고 부딫친 소리와 점점 느껴져오는 그 특유에 아픔에 머리가 띵한 곳을 움켜잡으며 신음소리를 내밷는 그는 바로 좀 전까지 코 앞에 보였던 선배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헉 숨을 들이켰다.


 "서, 선배! 괜ㅊ....."
 "....."


 어떻해. 나 사고 쳤다. 바로 위로 넘어진 탓에 그와 한뼘 정도 거리를 두고있는 다이스케는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에 한순간 숨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워낙 가까운 탓에 그의 숨소리가 느껴져왔다. 그것은 마치 순식간에 강한 전력이 제 몸안으로 흘려 들어가 마비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온 몸이 경직되어버린 다이스케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새하얘진 머릿속. 식은땀이 날 것만 같은 상황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다이스케에게 문뜩 조금 열려있던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갈색머리가 포착됬다. 저도 모르게 내려가는 시선. 닫혀버린 두 눈과 그의 얼굴이 눈에 새겨지듯 들어오자 이렇게나 가까운 곳에서 선배를 본적이 있었나? 문뜩 떠오른 생각.
 아, 아니 그 이전에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하는거냐며 자세도 이게뭐냐며 마치 자신이 동경하던 선배를 덮친꼴이지 않느냐! 하고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는 다이스케의 머릿속은 대혼란이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다이스케는 감탄해보였다. 이렇게나 가까이서 본적이 없어 미처 몰랐었는데. 어느새 빤히 그의 닫혀있는 두 눈을 내려다보고 있는 다이스케는 생각했다. 그리고 곧바로 화악 뜨거워지는 열기에 순식간에 그의 얼굴은 발그레 붉어져 있었다. 속눈썹이 정말 긴거 같다고. 마치, 여자처럼.


 "으아아...뭐라는거야.."


 입원한 선배를 무, 물론 실수이긴 하지만 기절 시킨 것도 모자라 이런 이상한 생각까지 하다니, 으아아!! 이 바보!! 뭐하고 있는거야 지금! 마음속에서 꾁꾁 소리를 지르는 다이스케는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지금당장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싶다고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음을 울며겨자 먹기로 다이스케는 제 밑에서 정신을 잃은 타이치를 이제 어쩌지 하는 심정으로 내려다본 것이 시발점이 되어 또다시 제 시야 안으로 비춰진 그의 모습을 하나하나 담는 그 짧은 순간이 길게만 느껴지는 착각이 들었다.


 진짜 여자 같다, 타이치 선배.

 또다시 감겨진 그의 얼굴을 살피던 시선은 곧 자연스럽게 살짝 벌어져 있는 그의 입술에서 멈추었다. 두근. 본래 너무 작아 들려올 리 없는 소리가 조금씩, 왜 때문인지 제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갈수록 소리는 빨라짐과 동시에 더더욱 커져만 갔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머릿속에 떠오른 단 한가지 생각. 입맞추고 싶다. 분명 뭔가 잘못됨을 다이스케는 깨닫지 못했다. 두근거리는 제 심장소리만이 들려왔다. 마치 악마가 속삭이는 것처럼 오직 그 소리만이 들려왔다. 착각일까, 아니면 정말로 이 두근거리다 못해 터질거 같은 심장소리는 정말로 악마의 속삭임일까. 악마의 꾀에 지배당해 아무런 사고도 할 수 없었던 다이스케는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당겨지듯 커져만가는 소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마치 조종당하듯 그대로 고개를 숙여 다가갔다. 

 따뜻하다. 맨처음 다이스케는 그렇게 느꼈다. 맞닿은 입술의 감촉에 묘한 기분. 정확히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저 편안해지는 그 기분이 좋았다. 따뜻하고, 또 부드러운. 좀 더, 조금더 알고싶다는 생각에 다이스케의 그 작은 입술이 움직이려는 순간이였다,


 "뭐하는거야."


 들어본 거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목소리의 주인을 생각해낸 다이스케는 얼어붙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목소리보다 훨씬 더 낮은 톤의 목소리에는 무서울만큼 차가운 냉기를 띄우고 있었다. 흠칫, 맞 닿은 감촉을 뒤로하고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본 다이스케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들어온 그가 서있었다. 병실 앞에 서있는 그가 자신을 매섭게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고있다. 그 하나만으로 다이스케는 방금전까지만해도 쿵쾅되며 자신을 지배했던 악마의 속삭임 같았던 심장소리가 사라짐을 눈치챘다. 차갑고 매서운 분위기 속에서 압도당한 마냥 타이치의 몸 위에서 내려와 침대에서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떨어지면서 그를 마주하고는 계속 자신을 매섭게 바라보고 있는보고 있는 그에게 뭐라도, 뻔한 변명이라도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에 다이스케의 몸은 조금씩 떨림을 보이고 있었다. 빨리 어떻게 하지 않으면 정말로 죽을 거 같다는 두려움에 열리지 않는 입을 억지로 움직여 간신히 말을 꺼내었다.


 "야, 야마토 선..."
 "내가 왜 네 선배야."
 "그, 그게... 사실은..."
 "닥치고. 내 물음에나 대답해 모토미야."


 자신을 이름으로 불러주었던 그가 갑자기 성으로 부르며 노려보고 있다는 것에 다이스케는 순식간에 흔들리는 제 눈 시야가 흐릿해지는게 보였다. 그리고 일렁거리는 무언가는 아마도 눈물. 자기가 눈물을 보이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어버버 거리며 떨리는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다이스케는 그 시퍼런 푸른 눈동자를 마주하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옮기며 피해버렸다. 제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그의 약한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사나운 빛을 띄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야마토는 다이스케에게 다시 한번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


 "뭐하고 있었냐고."
 "그, 그게...."
 "으으..."
 "타이치?"


 야마토에게 눌려 다이스케가 눈물을 보이며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들려온 신음소리에 두 사람 모두 침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머리가 아작날것만 같은 두통에 인상을 구겨보이는 타이치는 침대 바로 옆에 위치한 창문을 그대로 통과해 들어온 눈부신 빛을 가리고자 팔을 힘겹게 올려보이고 있었다. 겨우겨우 따사로운 햇빛을 피해 두 눈을 깜빡거리고 있던 타이치가 머리를 감싸며 무거운 동작으로 잘 움직여 주지 않는 제 몸뚱아리를 원망하며 힘겹게, 꾀나 힘들어 보이는 얼굴로 겨우 자리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아직 다이스케와 야마토 사이에서 흐르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타이치가 희미한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쾅하고 부딫친 소리를 만들어낸 곳을 움켜잡으며 안그래도 머리 속에서 천둥번개 치는 것만 같은 통증만으로도 힘들어죽겠는데 커다란 충돌로 인한 아픔이 더하자 골로 갈 일 있냐며, 두통이 너무나도 심해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 흐릿한 제 시야에 포기하고 눈을 아예 감아버리는 타이치가 한탄해보였다.


 "아 진짜 다이스케. 너 나한테 뭐 앙심 품은거라도 있는거냐..."
 "서, 선배...."
 "...뭐야 너. 왜 울고있..."
 "죽을 죄를 졌습니다, 선배!!!!!!!"
 "하아? 야, 야! 어디가...는..."


 희미하게 버티고 있는 제 의식은 금방이라도 또다시 잃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예사롭지 않는 두통이 끊임없이 지속되자 찾아온 갈증에 텁텁한 입안에서 거칠거칠한 목소리가 나와버렸다. 그런데 들려온 목소리는 흔들리는 물기 어린 목소리. 저절로 무거운 눈꺼플을 들어올린 타이치의 희미한 갈색 눈동자에 보여진 후배의 모습에 당황하며 내밷어진 말에 갑자기 냅다 울면서 달아나버리는 다이스케를 타이치는 붙잡을 틈도 없이 병실 문을 확 열어재껴 나가버린 탓에 열려진 곳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였다. 그리고 뒤늦게 타이치는 저 말고 또 다른 인기척이 있음을 깨닫고 시선을 옮겨 보이자 보이는 그의 모습에 타이치는 멈칫해버렸다. 갑작스런 혼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의 눈동자가 애처롭게 보일 정도로 그와 시선을 마주하자마자 크게 흔들려보였다. 열린 문 옆에 벽에 기대 서있는 그를 발견한 타이치는 열려져 있는 문을 닫아보이며 발걸음을 옮겨 제게 다가오는 그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며, 그 긴 다리로 성큼성큼 몇걸음 안되서 침대 앞으로 온 그를 올려다보는 타이치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단 한 사람뿐이였다.


 "...야마토?"
 "응, 타이치. 나왔어."

 "아, 으응... 어서와..."

 

 

 머리를 부여잡으며 깨어나자마자 갑자기 울며 뛰쳐나간 후배에 이어 기다렸다면 기다렸던 그가 찾아왔음에 타이치는 적지 않게 당황해 보였다. 늘 평소처럼 입가를 올려보이며 제게 말을 건네는 야마토인데 뭔가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하지만 쉴틈없이 지끈거리는 심한 두통때문에 타이치는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게 복잡하다. 생각하기를 거부해 조금이나마 통증을 잊으려고 하는 타이치는 머리가 아프니 사고도, 감각도 둔해지는 것만 같았다. 왠지 모르게 저를 내려다 보고 있는 그의 시선이 걸렸지만 생각할 여유따위는 진작에 없었던 타이치로서는 괜시리 그의 시선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이스케를 떠올린 그가 헉 숨을 들이키고는 맞아 다이스케! 하고 몸을 움직이려 하자 제 어깨를 잡는 손길이 느껴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갑자기 제 어깨 위로 손을 올려놓은 그의 행동에 타이치는 저를 막아세우는 야마토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뭐하는거냐며 빨리 다이스케를 쫓아가야 한다는 메마른 그의 목소리에도 꿈쩍도 하지않고 타이치를 내려 보기만 할 뿐인 야마토는 그 답지 않게 당황해하며 다급해보이는 타이치를 구경하듯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곧 그 입에서 제 이름이 또 다시한번 나오려고 하자 야마토는 제 이름을 타이치가 부르기도 이전에 그의 어깨 위에 올려 놓았던 손에 힘을 주었다.

 

 

 "아흑...."

 "..."

 

 

 성인 못지 않은 힘으로 있는 힘껏 뒤로 짓누른 야마토 때문에 끼이익, 오래된 듯한 침대에서 삐거덕하는 소리가 울렸다. 시트 위로 다시 눞혀진 타이치는 또다시 정신을 잃을 뻔한걸 느꼈다. 희미했던 정신으로 용캐 그 큰 흔들림을 버텨낸 타이치는 생각지도 못한 그의 행동에 놀랄 틈도 없이 갑작스런 후유증으로 머리속에서 울려되는 소리와 조임에 눈물이 질끈 나와버렸다. 연이어 갈증을 호소하고 있던 메마른 목구멍에서는 거친 헛기침이 튀어나와 버렸다. 

 

 

 "아 진짜, 뭐하는.. 거야 너..."

 

 

 밝은 빛이 또다시 제 얼굴에 비쳐지다가 곧바로 그림자가 드러나자 제 위로 올라온듯한 그에게 뭐하는거냐며 원망 가득한 목소리로 힘겹게 타이치가 말했다. 꽤 심각한듯 많이 아픈건지 잘 보이지도 않는 눈물을 눈 옆으로 떨어뜨리며 천천히 눈을 떠보인 타이치의 갈색 눈동자가 보였다. 손 한 뼘 정도 나는 거리에서 익숙한 갈색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야마토는 입을 열었다.       

 

 

 "타이치."

 "..."

 "타이치. 소독하자."

 "뭐?"

 

 

 아픈 사람을 간병하러 온 사람이 더 심각하게 만들어버린 그가 얄미워 째려보기만 하던 타이치는 그가 겨우 꺼내는 말이 소독하자는 그 한마디에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하지만 타이치는 점점 고개를 숙여오는 야마토의 행동에 흠칫한 순간 곧 제 입술에 맞닿은 느낌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 그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키스할 리 없는데. 무슨 꿍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저가 알고 있는 이시다 야마토는 이렇게 무턱되고 입맞춤 할 사람이 아니였다. 가벼운 입맞춤에 놀랐지만 눈을 감고있는 야마토를 보며 타이치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자신이 정신을 잠깐 잃었을 때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래서 타이치는 야마토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을려고 했다. 하지만 곧바로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이번에는 잡아먹을듯 거칠게 덮쳐오는 키스에 한순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정전기 같은 짜릿함을 느낀 타이치는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자, 잠깐 야마.. 후읍."

 

 

 숨이 한 순간에 멎는 답답함에 한번, 그 답지 않은 거친 플레이에 두번 놀란 타이치는 눈물을 보였다. 너 왜그래 정말. 타이치는 정말 묻고 싶었다. 자신이 뭘 잘못하기라도 한건지 숨 한번 쉬게 해주지도 않는 그는 끈질기게 제 혀를 괴롭혔다. 숨막혀. 괴로워. 좀 그만해 야마토. 저도 모르게 눈물만 뚝뚝 흘리며 그의 옷자락을 힘없이 잡아보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당기거나 밀 힘도 없는건지 그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두손은 스윽 놓치는가 싶으면 다시 겨우 옷자락을 움켜 잡고 있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이 흘렀다. 투명한 선이 늘어지다가 툭하고 끊겼다. 아, 이런.

 

 

 

 

 

 "나중에 타이치한테 죽었다."

 

 

 눈을 떠보이면 아차, 하고 후회하는 야마토였다. 살짝 고개를 들어 타이치의 얼굴을 단단히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떨어지지마자 힘없이 옆으로 고개가 넘어졌다. 언제부터였을지 모를 그의 눈이 감겨져 있는 것을 내려다보는 야마토는 괜시리 타이치에게 미안해졌다.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제 노란 금발을 긁적이며 곤란해하는 야마토는 그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을을 알고 있었다. 분명 사고였을테지. 하지만 거기서 끝내지않고 일을 벌인건 아마도 다이스케. 애당초 정신을 잃었을 타이치는 좀 전에 있었던 일조차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안그랬으면 튀쳐 나간 후배를 다시 쫓을 생각이나 하고 있을리 없지. 야마토는 생각했다.

 

 타이치에게 있어 다이스케는 아끼는 후배. 다이스케에게 있어 타이치는 우상이자 존경하는 선배. 그 뿐이다, 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저쪽은 그게 다가 아닌 거 같다. 칫. 혀를 차보이는 야마토는 다시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나 인상을 구겨버렸다. 우연이였다. 정말로 우연. 동생 타케루에게 끝까지 캐물어 왜그러냐고, 통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데 아무것도 아니라는 동생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단번에 눈치챈 야마토는 타이치 일이야? 하고 언지시 물었다.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3년전, 예전과 달리 동생은 그와 관련된 일이라면 잘 숨기질 못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흠칫 눈에 보일정도로 당황한 그를 보며 한숨을 내밷었다. 왜 또, 

 

 

  '그녀석한테 무슨 일 생겼어?'      

  '...하아. 타이치형 쓰러졌어, 형."

 

 

 더이상 숨겨봐야 소용없다는 걸 안 타케루는 순순히 답해주었다. 하지만 야마토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물었던 것이기에 들려오는 대답에 멍해졌던가. 방금 뭐라고. 다시 확인차 되묻는 형의 표정이 참 볼만했던 타케루는 애써 나올려는 한숨을 참아보이며 병원이름을 알려주었다. 타이치형이 부탁했는데 역시 제 형에게는 못 숨기나, 하고 타케루는 어느새 사라진 형의 모습을 찾다가 서서히 닫히고 있는 현관문을 발견하고는 동작 하나는 빠르다 하고 감탄해보였다. 그리고 곧 띠리릭, 들려온 잠김음을 뒤로하고 타케루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미안해요, 타이치형. 약속 못 지켰어. 곧 울리기 시작하는 전화벨 소리. 폰 화면에는 '야가미 히카리' 라는 수신자명이 보이고 있었다. 

 

 

 

 

 

 

 

 

 

 

 

 

 

 

 

 

 "이제 어쩌지..."

 

 

 서둘러 달려왔더니 보이는 관경에 할말을 잃었었다. 그리고 가만히 그걸 지켜보고만 있었던 자신이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으앗, 하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문을 열려던 손이 멈춰버렸었다. 왜 때문인지는 본인 스스로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그가 사고로 타이치 위로 넘어진 후 죄송하다며 타이치에게 사과하면서 금방 떨어질 줄 알았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곧바로 문을 열지 않은게 아닐까 하고 야마토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곧바로 떨어질 줄 알았던 다이스케가 곧 고개를 숙이며 그 자세 그대로 흐르던 그 몇초 정도라는 짧은 시간을 야마토는 길게 느꼈다. 온갖 생각을 해보이던 그는 결과적으로 모든 잡 생각을 뿌리치고 질투와 분노라는 단어만 새기고 문을 열었다. 마음에 안 든다. 단지 그뿐이였다. 

 

 

 

 "...일단은."

 

 

 기절하듯 잠들어버린 그를 안아 들어올린 야마토는 배게 위로 편안한 자세로 타이치를 눞혀 주었다. 가만 보면 누구때문에 불그스레 해진 얼굴에 흠칫 머뭇거리며 이마 위로 손을 올려보인 야마토는 또 한번 한숨. 없던 열까지 생기게 해버렸다, 으으 갈수록 미안해져만 가는 야마토는 급히 물수건을 준비해 가져왔다. 차가운 수건을 조심히 이마 위로 올려준 야마토는 타이치가 누워 있는 침대 위로 풀석 앉아보였다. 그가 깨어나면 뭐부터 해야하지, 하는 생각을 해보이며. 

 

 

 

 

 

 

 

 

 

 

 

 

 

 

 

 

 

 

 

 그가 있던 병실에서부터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 안나. 하지만 딱히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 그냥... 그냥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은 다이스케는 제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집에 아무도 없는데도 문을 잠그고는 벽에 기대어 서있다가 스르륵 그대로 주저앉아 제 무릎 사이로 고개를 숙여버렸다. 타이치 일로 병원에 갔다온다고 급히 달려갔던 그가 갑자기 돌아와서는 아무 말이 없자 그의 파트너 디지몬은 걱정스런 얼굴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다이스케? 하고 불러도 대답없는 그의 모습은 필시 이상하다고 느낀 치비몬은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불안했다. 무언가에 도망치듯 달려 들어온 그의 얼굴을 스치듯 보았을 때, 치비몬은 그를 반길려고 들었던 손을 허공에서 멈춰보였었다. 잠깐동안 보였던 그것은 치비몬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왜. 어째서,

 

 

「 다이스케? 다이스케-. 무슨 일이야? 왜 아무 말도 없는거야, 다이스케. 」

 "...혼자 있고 싶어, 치비몬."

 「 ...울지마, 다이스케.  」

 

 

 

       울고 있는거야?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처음 선배와 만났을 때부터. 자신은 선배를 우상으로서 따르던 것이 아니라 좋아해서 따라다녔을지도 몰라. 그가 준 고글을 머리위에서 끌어내려 멍한 시선으로 고글을 바라보았다.  

 

 

 "알고 있었어."

 

 

 타이치 선배가 야마토 선배를 좋아하는것도, 야마토 선배가 타이치 선배를 좋아하는것도. 어쩌면 이미 남몰래 사귀고 있을지도 몰라. 저를 만나기 이전부터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추억을 함께해왔을 두 사람이였다. 코시로 씨에게 언제 한번 경험담으로 들었던 것처럼, 파일섬이라든지 서버 대륙이라든지 저가 모르는 디지털 세계 곳곳에서 여러 힘들고 신비로운 모험같은 일을 겪은 두 사람인데, 특별할 수 밖에 없잖아. 하지만 그에비해 자신은 단지 타이치 선배의 용기의 문장이 계승된 디지멘탈을 이어받은 거 뿐이였다. 차이가 났기에,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선배 곁에 있고 싶었다. 야마토 선배보다는 아니겠지만 자신도 타이치 선배에게 있어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다. 그 뿐이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선배와 지내게 되는 추억들이 많아질수록 욕심이 생겨났다. 악마들은 이를 눈치채고 제게 속삭여 온거일지도 모른다 .

 

 입 맞추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스위치를 켜버린 것처럼 곧바로 기다렸다는 듯이 속삭여온 소리는 심장소리를 대신해 자신을 지배헸다. 그리고 그것에 이끌려 입 맞췄다. 가벼운 키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그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감촉을 다이스케는 다시 떠올렸다. 하지만 고개를 크게 휘젖는 다이스케는 고글을 잡은 손에 힘을 준채 고개를 다시 숙여버렸다. 잊어야만 했다. 가져서는 안될 감정이였다. 타이치 선배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 마음 하나는 진심이였다. 그리고 그가 행복해질려면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야마토 선배임을 다이스케는 인정해야만 했다. 알고 있어. 알고 있는데. 차라리 몰랐으면 이렇게 아프지 않았을까. 다이스케는 생각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허락도 없이 어느순간 생겨나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져버려서 좋아한다는 감정으로 자리 잡았을 때, 그리고 그 존재를 들어냈을 때. 다이스케는 울컥했다. 폭발한 것처럼 자신은 타이치 선배, 아니 야가미 타이치라는 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자마자 그 감정을 지워야만 했다. 애초부터 잘못된 것임을 모르고 커져버린 감정을 지금 없애야만 했다. 제게 허락되지 않는 사랑을. 그런 현실에 다이스케는 눈물을 흘렸다.

 

 

 

 

 

 

 

 

 

 

 

 가져서는 안될 마음을 가져버린다면. 그것은 '죄' 라고 할 수 있을까.

 

 

fin.

 

 


 

2014.09.07

2015.08.16  리메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