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디지몬] Dream

[야마타이] Dream. 14

ㅁㅣ리내 2021. 8. 1. 03:58

 

 

2003년 오다이바 메모리얼. 그 약속의 장소에 모여 12명의 아이들과 그들의 파트너 디지몬들이 옹기종기 원으로 둘러앉아 서머 메모리 당시 타이치가-정확히는 타케루와 히카리를 제외한 선대 선택받았던 이들이-웬디몬의 의해 겪었던 일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차분하게 들려주었다.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 그 일에 정신을 차리니 자신을 포함한 여섯 명의 이들이 어디인지 모를 공간에 갇혀 있었으며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자신들의 몸이 어려져 갔다고. 어둡고 추운 그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누군가의 고독, 외로움, 슬픔처럼 부정적인 감정들뿐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 공간이 웬디몬의 깊은 마음속과 연결된 또는 그 마음 자체였던 곳 같다는 타이치의 말에 경청하고 있던 이들은 소리 없이 놀라거나 하나같이 경직되어 있었다. 덧붙여 웬디몬이 단 한 번 기뻐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그 어둡기만 했던 공간이 한순간에 꽃밭이 펼쳐진 공간으로 뒤바뀌기도 했었다는 설명이 이어지자 후배 중 누군가의 입에서 서머 메모리의 꽃밭이라는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이전에 다이스케들에게 들었던 워레스의 대한 것과 타이치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조합해보면 확실히 그가 말한 대로 그 공간이 과거 헤어졌던 어린아이-워레스-를 찾고자 했던 웬디몬의 마음속일 수도 있다는 결론이 생겨나자 이제야 앞뒤가 들어맞기 시작하는 진실에 아이들은 누구나 할 거 없이 생각이 깊어져만 갔다. 직접 웬디몬과 맞닥뜨리고 워레스와 함께 싸웠던 다이스케들은 설마 선배들이 있던 곳이 그 웬디몬의 마음속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며 놀라고 있었고, 웬디몬에게 휘말린 당사자들은 타이치가 꺼내놓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무엇 하나 제대로 기억나지 않음에 골머리를 썩여야만 했다. 여태껏 떠올리고 싶었는데 기억나지 않는 현실에 답답함을 넘어 이제는 한스러울 지경이다. 왜 저희들은 똑같을 수가 없는 것인가. 그와 똑같은 일에 휘말려 그와 같은 것을 보고 느끼고 들었을 터인데. 어째서 한 사람만 기억하고 저희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 사실 하나 때문에 소중한 이가, 친우가, 동료가 지금까지 혼자서 감내하고자 했던 것임을 잘 알고 있는데 이래서는 듣기 전과 뭐가 다르냐고.

누군가는 이를 악물고, 또 누군가는 너무 억울해서 울고 싶어 하고, 힘이 되고 싶어 부단히도 노력하려 하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음에 조용히 화를 내고 있던 이들에게 타이치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와 상념이 멈춘다.

“뭐, 나도 처음에는 너희가 기억하지 못해서 당황했던 건 사실인데. 그에 대해서라면 이제 괜찮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렇게 쉽게 끝낼 일이 아니잖아 타이치.”

“맞아, 오빠는 우리가 그런다고 그럴 사람들로 보이는 거야?”

“우리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 건 알아 타이치. 하지만 우리 역시 네가 걱정돼.”

“여전히 잠을 설친다며. 그러면서 누굴 먼저 걱정하는 거야.”

잠잠히 이야기를 듣다가도 신경 쓰지 말라는 말에 단호하게 반박하는 죠를 시작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대듯 불만 섞인 어조로 도리어 질문하는 미미와 네 심정은 이해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며 솔직하게 걱정된다고 고하는 소라를 이어 미간을 찡그리고 있으면서도 금방이라도 불같이 터질 듯한 내면의 화를 억누르며 차분하게 말하려고 애쓰는 야마토를 끝으로 타이치는 갑자기 몰려온 회답에 누구에게 먼저 뭐라 해야 할지 몰라 절로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더라.

“아니 내 말은….”

“이제 저희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그리 말하고 싶으신 건 아닌 거죠…?”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흔들림 없는 올곧은 검은 눈동자가 마치 그리 전하는 것처럼 보여서. 타이치는 문득 코시로 뿐만이 아닌 지금 이곳에 모여 있는 아이들과 디지몬들이 바라보고 있는 시선들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마주하고 힘없이 미소 지었다. 하나하나에 대답하기보다 한 가지 결론 내린 자신의 생각을 대신 전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았다. 복잡하게 나갈 것 없이 심플하고 가장 최선의 방안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줄곧 해왔던 일들 중 하나였다.

“음… 확신은 없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저번 사건으로 우리가 휘말린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사실은 정론이라고 봐.”

“하?”

“…자세히 들려주세요.”

뜬금없는 말에 야마토가 의아해하는 사이 코시로는 신중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자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워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시야를 다르게 보려고 하니까 문득 생각난 거야. 우리가 결과적으로 서머 메모리에 휘말린 원인은 과거의 워레스를 찾으려고 한 웬디몬이지. 그리 원인을 확실히 두고 생각해보면 의외로 깔끔해지더라고.”

“어…. 저는 영 무슨 뜻인지….”

머리가 아파지는 거 같아 일그러진 얼굴로 갸웃거리는 다이스케가 넌지시 설명을 바라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면 그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이치조우지가 번뜩 떠오른 생각에 조심히 입을 열었다.

“그 말은, 저희가 그 원인인 웬디몬을 해치웠기 때문에 결과 역시 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게 맞다. 그 뜻인가요?”

“맞아.”

실제로 너희가 웬디몬을 해치워준 일로 사라졌던 우리들은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잖아. 가장 쉽고 명확한 사실 결과를 이야기하자 다들 이해가 간 얼굴들을 보였다.

“인과율이군요.”

-하모 어려운 이야기고마.

사념에 빠져있던 코시로가 툭 내뱉은 말에는 몇몇 이들이 어렵다는 반응들로-그의 파트너도 포함해- 금세 바뀌었지만 말이다.

“뭐, 굳이 따진다면 그렇지. 같은 이유로 사실은 웬디몬의 마음속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한 기억도 본래 사라지거나 떠올리지 못하는 게 맞지 않은가 하는 거야.”

웬디몬을 해치운 것을 계기로 사라졌던 이들이 돌아온 것처럼, 그 마음속에서 겼었던 일에 대한 기억도 자연스레 잊어야 했다고, 타이치의 말을 정리하면 그러했다. 요컨대. 떠올리지 못한다는 사실에 너무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말은 저희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거부가 아닌, 위로였던 셈이다.

뜬금없다면 뜬금없지만, 한편으로는 타이치 다운 위로에 코시로를 비롯한 아이들이 잠시 넋 놓고 있다가 몇몇 이들이 입을 열려는 찰나 이어지는 말소리에 순간 모두가 할 말을 잃는다.

“그래서일까, 정말로 그런 이유라면 왜 나는 온전히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걸까. 라는 의문만 남더라고.”

“…….”

“내가 기억해야만 했던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게 아닐까.”

“…….”

“사실은. 스스로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타이치.”

“타이치 형.”

“선배….”

알아야만 했는데 종국에는 알지 못한 채로 소중한 것을 눈앞에서 놓쳐버린 적이 있는 이들이 특히 그의 말에 가슴 한구석에서 울컥 솟아오른 감정에 절로 소리를 내었다. 소라는 끝에 가서야 겨우 마주한 자신의 ‘애정’을 뒤늦게야 알 수 있었으며, 타케루는 모두를 위한 ‘희망’으로서 자신의 한 몸을 희생하려한 소중한 파트너의 죽음에 이도 저도 못 하고 받아들여야만 했던 아픈 기억을 떠올렸고, 켄 역시도 자신이 가졌던 ‘상냥함’을 고의로 인한 악의로 잊고 있던 탓에 줄곧 곁을 지켜주었던 파트너를 눈앞에서 잃어야만 했다. 하나같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특별해서. 지금 저희가 마주하고 있는 그의 얼굴이 은연히 고난하고 이토록 타이치가 고민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의문에 진전은 있었나요?”

“애석하게도. 전혀.”

혹시나 해-어쩌면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었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에게 질문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코시로는 또 다른 논제에 턱 막혀 복잡하고 심란한 기분이 물밀 듯 몰려오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지금까지 해오던 일들도 제대로 된 성과 하나 없이 해결 조짐이 없었는데 거기에 또 다른 논제라니.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력하게 손 놓고 있기에는 또 제 성격에 맞지 않아서. 금방이라도 새어 나올 것만 같은 한숨을 삼켜내는 코시로는 버릇처럼 궁리해나간다. 그가 언급한 대로 사실은 저희처럼 기억을 잃고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일이라면 왜 타이치 씨만은 그러하질 못했나. 필시 당사자도 단순히 의문으로만 그치지 않고 있음을 근 한 달을 지켜본 이로써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잠을 설칠 정도였으니 의심할 여지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대체 무엇일까. 그가 잠을 설칠 정도로 가벼이 넘길 수가 없는 그 원인은 도대체 무얼까. 혹시 서머 메모리와 무슨 연관성이라도 있는 건. 그것도 아니면.

서머 메모리 사건 자체가 방아쇠가 되었다던가….

“…방아쇠?”

“엣?”

-코시로, 방금 소리 내어 말했습니더.

“앗, 그랬어요?”

타이치를 포함한 모두가 고개를 조용히 끄덕이자 으으, 당황해서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볼을 긁적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음, 그러니까 중점이 서머 메모리가 아니라 웬디몬 사건으로 인해 혹 타이치 씨에게 어떠한 계기가 된 것은 아닌가 해서요.”

“계기, 라….”

확실히 타이치는 서머 메모리 한에서만 생각해보았었다. 서머 메모리 자체가 아닌 연관된 별개의 일은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음을 자각하고 무심코 떠올려본다. 무엇이, 어떠한 점에서 저가 이리도 마음에 걸려서 놓지 못했던 것인지를 차근히 헤아린다. 유난히 추웠고 모두와 함께 있음에도 외로움을 느꼈던 그 고독하고 어두웠던 웬디몬의 내면을, 특별하다면 특별했던 마음의 공간을 타이치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때문인지 종종 어렵사리 잠에 빠져들면 그 공간과 유사한 곳에 있는 꿈을 꾸어서 잠을 자다가도 화들짝 깨어버린 탓에 잠을 설치는 이유 중 크게 한몫했던 터라 일순 피로감이 몰려와 미간을 찡그리다 문득 멈칫한다. 그러고 보니….

 

캄캄하고 쓸쓸해 보이는 그 어두운 공간을 보았던 게….

 

 

매서운 냉기와 멀리선가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돌연, 사고를 덮쳐온다.

“아.”

 

 

서머 메모리부터가 맞나…?

 

 

기억에 남아있는 건 오로지 새하얀 인영뿐이었는데.

“왜 갑자기―?”

-?? 타이치?

“타이치 씨, 왜 그래요?”

“왜 그래, 갑자기 어디가 안 좋아진 거야?”

갑자기 한쪽 팔로 머리를 부여잡은 그의 행동에 타이치의 품 안에 있던 아구몬과 양옆으로 앉아있던 코시로와 죠가 걱정스레 안부를 물어왔다.

안색은 나빠지지 않았는데…. 뭐, 처음부터 좋지도 않았지만…. 죠는 이리저리 빠르게 살피며 특별히 눈에 띄는 증상이 안 보임에 침착하게 그의 이름을 재차 불러주었다. 타이치는 순식간에 허공에서 벗어나 확 달라진 시야 안으로 죠와 코시로를 더불어 둘러 앉아있던 아이들의 분위기가 사뭇 심각하게 뒤바뀐 모습에 뒤늦게 아차 하고는 무심코 머리를 움켜쥐었던 손으로 휙휙 휘저으며 그런 게 아니라고 급히 둘러댔다.

“그런 게 아니라 갑자기 그 녀석이 떠올라서.”

“그 녀석이요?”

“응 새하얀 디지몬. 아, 확실히 아이스 데비몬이라고 했었지?”

타이치 입에서 그 이름이 들려오는 순간, 그날 현장에 있던 이들도 뒤늦게 전해 들었던 이들도 모두가 똑같이 얼어붙고 말았다.

“아…. 음…. 정말 갑자기 생각나 버려서…. 그, …미안.”

“…아니에요.”

“…오빠가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

괜히 그날의 일을 떠올리게 한 거 같아서 타이치는 바로 사과했다. 아이들에게도 또 디지몬들에게도 썩 좋은 기억이 아닐 터인데 순간 부주의했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다른 이들보다 눈에 띄게 흠칫했던 타케루와 히카리가 대표로 아니라고, 괜찮다고 일러주었다. 그럼에도 차갑게 가라앉은 이 분위기를 뒤바꾸기에는 부족해서 타이치는 곤란한 미소를 띤다. 이상하지, 여기서 더 그 일을 꺼내는 건 좋지 않음을 뻔히 아는데 이상하리만큼 타이치는 단순히 떠올렸다는 점에서 그냥 넘기기가 좀 뭐 했다. 감이 그랬다. 또렷하게 어딘가 남아있는 찜찜함, 그리고 언짢음. 그 점을 재빠르게 눈치챘는지 코시로가 눈에 띄게 긴장한 얼굴로 조심히 물어왔다.

“그 일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시는 거예요?”

“음― 뭐라고 해야 하지. 갑자기 그날도 본 거 같다는 기분이 희미하게 들어서.”

“? 무엇을?”

“뭔가를 찾아 헤매는 디지몬을?”

“네?!”

“잠!! 잠깐, 방금, 하???”

“?? 뭐, 뭐야 코시로도 죠도 왜 그렇게 놀라는… 어라, 다들… 왜 그래?”

타이치는 갑작스레 마주한 상황에 눈을 크게 뜨고 끔뻑거리고 말았다. 바로 옆에 있던 코시로와 죠가 화들짝 놀라는 기세에 덩달아 놀라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곳에는 다른 아이들도 무엇이 그리 놀란 것인지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있거나 힘껏 굳어있는 모양새였다. 아. 한 사람만 빼고.

 

 

 

“……. 방금 한 말에 어디가 그렇게 놀랄 부분이 있었어?”

지금 이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미간을 찡그리는 야마토가 다소 불만 어린 어투로 물었다. 하지만 선뜻 내뱉은 그의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고 기겁했던 이들 중에서 가장 먼저 번뜻 정신을 차린, 행동력 하나는 빨랐던 다이스케가 외쳤던 것은 타이치와 야마토가 어찌된 영문인지 저희 둘만 빼고 묘하게 흘러가 버린 사태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찰나였다.

“코, 코시로 선배!! 역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거 아니에요?!”

“!!”

금방이라도 어딘가로 달려갈 기세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후배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히카리를 흘깃 살펴보고 코시로에게 다급하게 외치는 안색이 누가 봐도 방금 한 말로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어서.

“자, 잠깐! 다이스케!”

“그래 다이스케, 우선 진정하고.”

“진정하게 생겼어?! 누나도 켄도 지금 들었잖아??”

“그, 그야….”

“어, 음….”

흉흉한 분위기에 당황해 다이스케를 말리려던 미야코와 켄이 도리어 그의 한 마디에 갈팡질팡하는 모습과 함께 흘깃, 겉으로는 조용해도 유심히 내다보면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히카리를 눈에 담자마자 타이치는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물론, 오래 알고 지낸 경험으로 예상컨대 제 옆에 있는 코시로나 죠를 비롯한 정황상 야마토를 제외한 이들에게 지금 물어도 곧장 돌아올 대답은 생각할 수 없었기에 질문을 받을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선배로서는 어쩐지 미안하지만.

“다이스케, 무슨 일 있었어?”

“에? 제가 아니에요!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한다면 선배죠!”

“? 딱히 지금 내가 한 말로 모두가 놀랐다고 생각되는 일은 떠오르지 않는데.”

“그게 아니라, 저번 크리스마스이브 날 나타났던 아이스 데비몬이 타이치 선배를 데려가려 했다고 코시로 선배가 알려― 우웁!”

바보!! 하고 후다닥 다이스케의 양옆으로 앉아있던 미야코와 켄이 기겁하며 누가 먼저랄 거 없이 반사 신경을 발휘해 서둘러 그의 입을 막아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착각을 뒤로하고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두 사람은 질문을 던진 당사자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굳은 모양새로 있는 모습을 보고는 내려놓았다. 아, 망했다고. 설마하니 이렇게나 허무하게 탄로 날 줄이야, 하는 얼굴로 멍한 선배들과-물론 금발 머리의 화사한 선배만은 눈에 띄게 경악한 얼굴이었으나 후환이 두려우니 오래 바라보지 못하고- 동기들을 하나둘씩 돌아보면서 본의 아니게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까무룩 고개를 힘없이 축 떨어뜨리는 미야코와 켄이었다.

 

 

 

“그게 무슨….”

그리고 여기,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다른 의미로 벙찐 타이치가 조금씩 혼란스러워져만 가는 머리에 자각 없이 중얼거리듯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덕분에 그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타이치와 가까운 위치에 있던 아구몬과 코시로, 죠, 두 사람의 파트너들뿐이었다.

데려가려 했다고? 아이스 데비몬이? 나를? 왜? 당최 알 수가 없다.

혼란스러워 보이는 그를 흘겨본 코시로와 죠가 나란히 성대하게 한숨을 쉬어 보이자 그제야 저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뒤늦게 깨달은 듯한 후배가 히끅, 흠칫해 보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기어들어 갈 듯한 사과의 목소리도 함께.

“그, 놀라서 저도 모르게…. 죄송해요.”

-으무… 다이스케는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분명 걱정돼서 그런 걸 거야.

그의 곁에 있던 치비몬이 보다 못해 제 파트너를 위해주려고 조심스레 말을 덧붙여오자 아이들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로 풀어내고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거 더는 숨길 수도 없는 일이고, 뭣보다 저기 저 흉흉해진 누구누구 씨가 알아버린 시점에서 저희가 굳이 이런저런 온갖 고생을 감당하며 숨길 이유는 하나도 없다는 점이 여러모로 더 컸다.

-…타이치, 괜찮아?

일찍이 그날 현장에 처음부터 있었던 아구몬은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코시로와 다른 아이들이 일단은 타이치를 위해서라도 숨기자고 했던지라 그동안 아무 말 하지 않았던 일로 내심 미안함과 사실을 알아버린 그가 걱정되어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레 묻는 목소리에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마주해오는 타이치가 이내 희미하게 미소를 보이고는 답해주었다.

“음… 괜찮아. 좀 놀랐을 뿐이랄까.”

솔직히 좀 혼란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그날 습격을 받은 후로 저를 데려가려 했다고는 한들 이렇게 멀쩡히 도움을 받아 무사할 수가 있었으니까. 타이치는 그보다도 오늘 알게 된 사실로 한 가지, 날이 갈수록 피폐해져만 가는 하루하루를 치어 보내던 중에 내내 들었던 의문이 새삼 고개를 드는 기분이 들어 이쪽이 왠지 모르게 더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최근에 히카리가 평일이든 주말이든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오거나 해서 항상 바빠 보였던 게,”

 

뜨끔.

 

 

 

“지금 알게 된 일 하고 관련이 있는지가 나는 더 궁금해지는데.”

 

뜨끔―!

 

 

 

-음… 타이치.

이 뭐라 말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어느 누구를 콕 지목할 필요도 없이 슬며시 제 시선을 피하는 모습들을 발견하고는 타이치는 그저 담담히 말을 건네었다.

“그간 고생이 많았겠네.”

무의식적으로 제품에서 조용히 끄덕이는 아구몬을 느끼면서.

“하.”

언뜻, 이랄까 이제는 보란 듯이 숨기려 들지 않고 시원하게 혀를 차는 소리가 하나 있어서 타이치는 애써 모른 체하려 하지만 그러기에는 저쪽에서 느껴져 오는 흉흉함이 어째 잊고 살았던 과거 소학교 시절의-동생의 일이나 여러 사정으로 엇나가던 시기에- 그와 맞먹는 기세여서 타이치는 나오려는 한숨을 본능적으로 삼켜냈다. 어째선지 지금 이 자리에서 저가 불만이나 못마땅함을 드러내면 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물고 날뛸 것만 같아서 그러했다. 막연히 ‘나 때문에 억누르고 있다’라는 인상을 느껴서 그런지 점점 머리가 멍해진다. 피곤함에 지쳐서인 것도 물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은 그렇다 쳐도 왜 야마토까지 다른 아이들과 달리 지금 상황을 알지 못해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타이치는 또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어서였다.

 

음, 일단은 저가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 할 거 같은데. 지금 해줄 수 있는 말이 많지가 않아서 길게 고민할 거 없이 금세 입 밖으로 꺼내었다.

“…그동안 내가 여러모로 신경 써주지 못한 거 같은데 미안. 그리고 고마워.”

무슨 일이든 간에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으니 타이치는 그리 말했다. 신경 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에 아직 소학교를 채 졸업하지 못한 아이들이 가장 먼저 아니라며 적극, 사양해 보였다. 저희가 그러고 싶었을 뿐이었다는 다이스케와 뭐든 도움이 되고 싶었다는 켄. 형이 사과해야 할 일은 아니라며 재차 콕 집어 이야기하는 타케루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는 이오리를 이어 그동안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저희끼리 진행해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미야코와 우린 오빠가 더 힘들어할까 봐 말 못 했다 전하는 히카리의 씀씀이가 너무나도 잘 보여서 타이치는 피곤함을 잠시 지워내고 맑은 미소를 피워냈다.

“뭐, 솔직히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그래서, 그간 나 몰래 무슨 일을 벌인 건데?”

역시 섭섭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질 않았을 야마토가 타이밍을 잰 듯이 타이치가 말을 끝마치자마자 매서운 시선과 함께 돌직구를 던져오는 바람에 조금이나마 풀리려 했던 분위기가 이번에는 살얼음판이 되어버리고 만다. ‘결국엔 이렇게 되는구나!’ 아까부터 심상치 않았던 그의 기운을 일동 모른 척 해오던 다이스케들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냈다. 이외가 있다면 저 겉으로는 얼음처럼 차갑기만 한 남자가 사실은 불같은 성격을 가진 자라는 점을 잘 알고 여러 경험으로 익숙해져 있는 이들-타케루와 히카리를 포함한 선대 선택받은 이들-은 오늘도 몇 번째일지 모르는 한숨을 삼켜낸다는 점일까. 그리고 늘 이런 순간에는 침착하고 빠르게 상황을 살펴 정리에 능했던 이들이 제일 먼저 분위기를 깨고 움직여 보였다.

“코시로.”

타이치가 그의 이름을 부르면,

“…알았으니까 두 번은 재촉하지 않으셔도 돼요.”

언제나 그래왔듯 코시로가 대답해주면 그만이었다.

 

 

 

 


우와... 정말 오랜만이죠ㅋㅋ 안녕하세요 여러분...(정좌) 

정말 의도치 않았는데 2021 오다이바 메모리얼 때 찾아오게 되어서 뭐랄까.. 혼자 흡족해지는 이 기분 좋네요(웃음) 그래도 디덕이라고 8월 1일이 오면 앗 그날이잖아? 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게 있어서 좋습니다 (탐라에 존잘님들 연성이 올라와서 매우 기쁨) 코로롱만 아니면 정말 오프만남해서 신나게 오타쿠 수다 떨고 싶은데 아쉽네요ㅠㅠ 그러고보니 오늘 디지몬 카페? 였나 행사 소소하게 하나 있던 거 같은데 저는 안 가지만 가시는 분들은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랄게요ㅎㅎ 

무튼.. 그동안 어쩌다보니 정신없이 보냈는데 그 중에 꼽자면(TMI) 저 동생이랑 같이 독립하게 되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좀 여러모로 바빴는데... 넵... 무튼..  것도 있고 타장르 겜도 요새 열심히하고 그래서 한동안 글 못 쓰다가 모종의 이유로(뭣 때문이었는지 기억도 안남) 내 글 다시 쓰고 싶어져서ㅋㅋ 간만에 디지몬 소설을 꺼내들었다가 띄어쓰기 맞춤법 등등 난리난게 또 보여서 후다닥 수정하고 한다는게 원래 정각에 올리고 싶었는데 늦어졌습니다 넵....

여담으로 제 소설 피드백 남겨주시는 분들 항상 너무 감사합니다...ㅠ 그 맛에 정말 연성할 맛 나요..흑흑... 업로드가 둘쑥날쑥이지만(.. 앞으로도 여유롭게 기다려주신다면 감사합니다.  

 

여담2로 디지몬 서치하다가 신 극장판 소식 있던데 비주얼 포스터 보자마자 헉 했어요.. 처음으로 디지몬 파트너가 된 아이의 대한 이야기 같아서 흠칫했음... 꿈시리즈에서 다룰 핵심 포인트였던지라.....OTL 이러다가 설정 충돌 일어날까봐 걱정했는데 2차창작은... >선동과 날조로 하는 맛이지< 하기로 했습니다...ㅋㅋ 무튼 극장판 너무 기대돼요 

 

 

 

  흠... 누굴까... 너무 궁금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