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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단편

[야마타이] 정말로,

by ㅁㅣ리내 2015. 9. 29.

 

 

 

 

 

 토요일 아침. 이번 주말은 따로 약속이 없어 나갈 일이 없었던 타이치는 편하게 집에서 쉴려고 했다. 불과 몇 분 전에 걸려온 전화 한 통화를 받기 전까지. 오빠, 어디 나가? 점심 시간까지 늦잠 잘 거 같았던 그가 왠일로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급하게 나갈 준비를 하고 있어 히카리가 갸웃해 보이며 물었다. 아아, 그렇게 됬어. 혹시 모르니깐 아침 먼저 먹으라고 당부하는 타이치에게 알았다며 늦을거 같으면 미리 연락하라는 그녀가 이쁘게 웃어 보이자 따라 웃어 보이는 타이치는 알겠다며 급히 몸을 움직였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슬슬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초가을, 아침부터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떨어보이며 드물게 일찍 잠에서 깨어났던 타이치는 아직 제 온기가 남아있는 따뜻한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가 잠을 청할려고 했지만 때마침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무거운 눈꺼플을 올려야만 했다. 그녀석한테서 연락이 와 처음에는 주말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로 저를 부르나 싶었다. 느닷없이 집 앞으로 나오라는 야마토의 말에 잠결에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급한 일이냐고 물었던 타이치는 나오면 알아. 하고 끊어버린 야마토가 의아할 뿐 통화종료된 핸드폰 화면을 잠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에게 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제법 바람이 차니깐 외투 하나 걸치고 나오라는 내용에 또 한번 멍하니 검은 화면으로 바뀐 제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곧 폴더폰을 닫아 보이며 으으, 불편한 움직임으로 상체를 일으킨 타이치의 부시시한 그의 갈색 머리가 방금 전까지 그가 자고 있었다라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자다 깬 모습 그대로 머리를 긁적여 보이는 타이치는 아침부터 정신없게 만들고 있어. 하고 약간의 불만이 담긴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하품을 해보이다가도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 놓았다. 일단은 그가 나오라고 하니 나가야겠지. 정말 무슨 일 있는 거라면 더더욱. 하아. 몸이 돌 덩어리처럼 무거워 괜히 한숨만 나와버렸다. 아침부터 이게 뭔... ..별 일 아니겠지. 타이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로 가 세안을 하고 나오면 이외라는 표정으로 놀란 듯한 히카리가 서 있어서 잠깐 멈칫했지만 곧바로 어디 나가냐고 물어오는 그녀에게 웃어 보이며 잠시 나갔다오겠다고 그녀와의 짧은 대화를 마친 후 다시 방안으로 들어온 타이치는 지금은 춥더라도 시간만 조금 지나면 더워질 변덕스러운 환절기 날씨에 가볍게 입을 수 있을 만한 외투를 찾았다. 도대체 뭐길래 이런 이른 시간에 저를 부르는 걸까. 

 

 방 한쪽에 걸려져 있는 외투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가 보낸 메일이 아니더라도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이라 타이치가 방 한 구석에 대충 걸어두었던 외투는 요즘 환절기라 자주 애용했던 것이였기에 곧바로 빼내어 제 몸에 걸치고는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으으, 역시 아침이라 그런지 춥다. 나오자마자 저를 맞이하는 차가운 바람에 멈칫한 타이치는 두리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익숙한 금발머리가 보였다. 역시 눈에 잘 뛴다니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멈춰있던 그의 발걸음이, 그가 서 있는 곳을 향해. 타이치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평소라면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은 침대 위에서 잠들고 있을 터였다. 오늘은 다른 날과는 달리 유난히 일찍 잠에서 깨어났고, 아침부터 그가 부르는 통에 급히 준비하고 나오느라 조금은 부시시해 보일 수도 있는 지금의 타이치는 찾고있던 그를 발견하자마자 미소 지어버렸다. 그리고 떠오르는 아함.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이런 시간에 전화할 정도면 급한 일 같은데 말도 없이 나오라고만 한 그의 갑작스런 연락 때문에 온갖 생각을 다하며 밀려오는 피곤함과 고통을 호소하는 제 몸을 애써 무시하고 감겨질려고만 하는 두 눈을 억지로 떠보이며 잠도 포기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와야만 했다는 것에 잔뜩 불만을 가지고 투덜되고 있었다. 히카리 앞에서는 차마 그녀가 걱정할까봐 티는 안냈지만, 무튼. 그를 만나면 한 소리 할려고 단단히 벼루고 있던 타이치였다. 어제 방과후 늦은 시간까지 곧 있을 축구시합 연습하다가 집에 간거, 이번주 주말은 죽은듯이 편히 낮잠이라도 자면서 푸욱 쉴려고 했던거 모르고 전화한 건 아니지, 야마토? 하고 말이지. 

 

 근데 막상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를 보자마자 불만 가득 드러내고 있던 얼굴이 싹 다 잊고 미소짖고 있는 난 뭐냐. 무거웠던 몸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그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건 또 뭐야. 이른 아침부터 그가 불러서 만났다는 게 마치,

 

 

 

 기쁜 것 처럼. 

 

 

 

 

 

 

 "……."

  "…야마토?"

 

 

 어, 뭐지. 발걸음이 서서히 느려지면서 곧 멈춰섰다. 왠지 모르게 평소와 분위기가 다르다. 가까워지면서 드는 생각에 타이치는 유심히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무슨 일 있는건가 싶어 멍한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야-마-토. 처음에 불렀을 때 반응이 없어 이번에는 길게 늘리며 부르자 그의 고개가 돌려지면서 마주오는데 순간 타이치는 숨을 멈춰세웠다. 그가 잠이 덜 깼나 싶었다. 그 왜... 있잖아, 정신적으로는 자고 있는데 몸이 움직이거나 말하는 그... 맞아 몽유병 같은. 그가 지금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모습으로 자고 있는 상태에서 여기까지 온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금 야마토는 답지 않게 멍해 있는 시선하며, 이상할 정도로 무표정이였다. 그런 그를 보고 반사적으로 얼굴 앞에 손을 획획 저어 보는 타이치의 행동에 야마토가 반응해 보이자 휴, 안도했다. 그제야 빛을 띄운 거 같은 그의 푸른 눈동자가 저를 초점으로 두고 있는게 보였다.

 

 야, 뭔데 그래. 조금은 걱정스런 시선으로 마주본 그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며 타이치는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야마토가 덥석 제 손목을 잡는 바람에 도로 집어넣어야만 했다. 대신 의아한 시선으로 갸웃해 보이며 잡힌 손목을 한번. 그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는 타이치의 눈동자는 곧 의아함에 더해 당황함을 담아냈다. 뭐하는 거냐고 그가 제 손목을 잡자마자 반사적으로 내밷은 물음에 야마토는 말은 필요없다는 듯 타이치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끌어당겨 발걸음을 옮기는 바람에 질질 끌려가는 신세가 되어버린 타이치였다 .

 

 

 

 뭐야, 진짜.

 

 

 

 

 

 

 

 

 

 갑자기 시내에는 왜? 저의 물음에 그제야 발걸음을 멈춘 그에게 타이치는 이때가 기회이다 싶어 내내 잡혀있던 손목을 조심스럽게, 그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 정도로 그의 손아귀에서 빼 보이는 타이치는 꽤나 힘을 주고 잡고 있던 탓에 시큰거리는 손목을 쓸어보였다. 난데없이 자신을 이곳으로 끌고 온 이유가 뭐야. 아까부터 그에게 그리 묻고 싶었다. 말도 없이 저를 데리고 왜 온거냐고. 이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타이치는 다시 한 번 제 앞에 서있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까부터 뭘 찾는건지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던 그가 뒤돌아 저를 마주보고는 미소 지어 보이는데 타이치는 인상을 구겨보였더라. 아, 씨발. 존나 잘 생겼네. 

 

 그냥.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서 있기만 해도 남자가 봐도 멋있다고 생각하는 그가 저를 보고 웃어 보이니깐 욕 나올 정도라고 타이치는 알고 있었는데도 볼때마다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에 부러움인지 질투인지 모를 이 복잡한 감정 속에서 혀를 차보이며 투덜되어 보였다.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그의 푸른 눈동자를 피해 보이며 뚱한 표정으로 다른곳에 시선을 옮겨버리는 타이치를 보며 야마토가 늦게나마 입을 열었다. 

 

 

 "타이치."

 "뭐."

 

 

 그가 제 이름을 불러도 대꾸 하나 없이 이유불문하고 끌고 온 탓일까, 가시 돋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식 웃어 보이는 야마토는 지금 그가 제 얼굴을 보고 너 너무 잘 생겨서 짜증나. 하고 있음을 알 길이 없었기에 대충 얼버부려서라도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데리고 올 걸 그랬나. 하고 조금은 반성해 보이며 꽁해 있는 타이치에게 말했다. 

 

 

 "뭐 마실래?"

 

 

 그의 오른손이 자연스럽게 어느 한 곳을 가리키고 있어 그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그가 유도한데로 시선을 따라 옮긴 시야 안으로 들어온 카페에 타이치는 한 박자 늦게 이해해 보였다. 유리로 되어 있는 카페 내부가 훤히 보이는 와중에 카운터에서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분주하게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나 다른 직원들이 보이지 않는 걸 보면 가게 오픈한지 얼마 안 된거 같은데, 괜찮을까. 하고 타이치는 괜시리 바빠보이는 직원이 당황한 얼굴로 가게 안으로 들어갈 저들을 가까스로 웃어 보이며 맞이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더군다나 저 직원이 모든 메뉴들을 만들 수 있는 직원이라면 문제는 없겠다만 혹여나 단순한 아르바이트생이라 일찍 나와 문을 열고 카페를 관리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또 그것도 서로가 난감하게 되어버리는 문제일텐데 이를 알고는 있는 걸까, 이녀석.

 아침부터 연락해서 이런 곳에 끌고 오질 않나 느닷없이 왠 카페냐고 투덜되어 보여도 야마토는 그저 제 말에 웃여보이기만 할 뿐, 가자는 말만 제게 툭 던져 놓고는 다시 제 손목을 아프지 않게 감싸쥐고는 카페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에 타이치는 한숨을 내밷으며 이제는 될데로 되라-. 하고 미리 저 직원분께 사과를 올리며 부디 카페 안에 있는 남자가 카페 관리만 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아니기를 타이치는 기도했다. 

 

 

 

 

 

 띠링-. 문을 열자 들려오는 맑은 소리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카페 오픈 시간보다 이른 8시 20분. 의도치 않게 주말 첫 번째 손님이 되었다.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늦어서 죄송해요."

 "아, 아뇨…. 가져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른 시간에 카페에 들어선 두 사람의 깜짝 방문에 다소 놀란 듯한 직원은 이를 가볍게 화사한 미소로 넘겨 보이며 주문을 받았다. 다행히 몇 가지 음료 정도는 만들 수 있는 직원이였는지 두 사람이 주문하는 음료를 계산하고 지금 막 가게를 열어 아직 준비가 덜 됬다며 양해를 구하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 요청했다. 영업 시작 전에 온 두 사람이였기에 타이치는 당연한 상황이라 여기며 괜찮다고 되려 천천히 해주셔도 된다며 사과를 구했다. 타이치의 그런 의도를 파악한 직원은 마음씨 좋은 손님에 말에 기분이 좋았는지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 음료를 만들고 따뜻한 라떼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담긴 음료 두 잔을 트레이에 옮겨 직접 그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로 가져다주었다.

 

 

 "자, 아이스 아메리카노."

 

 

 트레이 위에서 차가운 얼음이 둥둥 떠다니고 있는 아메리카노에 커피스틱을 꽂아 그에게 건네주는 타이치는 그 쓴 걸 시럽도 없이 어떻게 먹는거냐고 한 마디하며 자연스럽게 야마토에게 말을 걸었다. 자기가 먼저 불러냈으면서 영 말을 꺼낼 생각을 안하는 야마토 때문에 주문한 음료가 나오기 이전부터 조용하고 따뜻한 햇볕이 들어오는 창가 한 구석에 앉아 그의 옆모습을 곁눈질하며 지켜보고 있던 타이치는 여간 답답함이 계속되는 지루함 속에서 하품을 해보일 뻔 한 걸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 꺼내기 힘든 말인가 싶어 조용히 기다려주고 있던 타이치에게 아까 그 직원이 음료를 가져다주자 감사인사를 해보이며 받아들고 그가 주문한 음료를 건네주며 타이치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말을 걸며 그가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대화를 유도했다.

 

 근데 이 녀석은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게 틀림없다. 기껏 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 보려고 말을 걸었더니, 아 뭐- 하고 그냥 저가 건네는 음료를 받기만 하고 커피스틱으로 내용물을 휘젓고만 있는 그를 타이치는 반 포기해버렸다. 쳇, 나도 음료나 마시란다. 언젠가는 말 해주겠지-. 하고 조금은 토라진 얼굴로 제 음료 뚜껑을 열었다. 지금 막 나온 참이라 따뜻한 라떼를 한 모금 마시는데 한 순간, 야가미 타이치는 아침에 제법 쌀쌀한 추위로 따뜻한 게 당겨 즐겨 마시던 라떼를 주문한 것을 후회했다.   

 

 

 "좋아해."

 "푸웁-!"

 

 

 음료를 마시면서 또 한 번 힐끔 쳐다본다는 게 그만 눈이 마주쳐 버렸다. 근데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이 녀석이 난데없이 저를 바라보며 내뱉은 한 마디에 쿨럭 사래가 들려 버렸다. 아뜨뜨!! 사래가 걸려도 하필이면 뜨거운 걸로 사래가 걸려 버려서 놀라 당황한 나머지 놓칠 뻔 한 음료 잔을 어떻게 알고 제 손으로 잡아 빼앗아 보이는 야마토 덕분에 그 뜨거운 걸 엎지르는 불상사는 피했지만 지금 당장은 사래가 걸려 헛기침을 내뱉고 있는 목구멍이 뜨거움에 더해 쓰라리기까지 해 그 얼마 되지 않는 기침 몇 번에도 타이치는 그 짧은 순간이 너무나 괴로웠다.

 

 

 "뭐?"

 

 

 간신히 콜록거림을 멈추고 입가에 묻은 음료를 손등으로 닦아 보이며 그렇게 외쳤다. 꽤나 뜨거운 게 사래가 걸린 탓인지 약간 거칠고 갈라진 목소리에 야마토가 살짝 인상을 써 보이며 손에 들고 있던 아메리카노를 그에게 건넸다. 일단 마셔라. 갈라진 제 목소리에 타이치 본인도 적지 않게 당황했었기에 그가 건네는 음료를 순순히 받아들어 커피스틱을 입에 물었다. 차가운 커피가 따끔거리는 목구멍을 지나가자 그나마 좀 나아지는 거 같다. 으으, 근데 쓰다. 맛은 뒤늦게 느껴졌다.

 

 원래 자신은 이렇게 쓴 맛 보다는 단 맛에 익숙했기에 영 적응이 가질 않는 아메리카노를 그에게 다시 건네주자 살며시 미소 지어 보이며 방금 전까지 타이치가 물고 있던 커피스틱을 입안에 넣는 야마토는 커피를 들이마셨다. 자신은 쓰다며 인상을 썼는데 야마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눈에 딱 보아도 상당한 양을 한 번에 마시는 그를 바라보니 왠지 진 느낌이 들었다. 어른들이 자주 마시는 저 아메리카노를 자신은 마시지 못하고 야마토는 마신다는 점이.     

 

 

 

 근데 방금 그거,

 

 

 

 

 

 "좋아한다고."

 "어…."

 

 

 간접 키스다. 하고 생각함과 동시에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 화악 느껴진 열기에 타이치는 굳어졌다. 방금 전까지 마시고 있던 라떼의 그 달콤한 따뜻함도 아니었고, 정말로 얼굴 전체가 뜨거워지는 듯 한 그러한 열기에 조금씩 빨라지는 소리가 있었다. 평소라면 들릴 리 없는 그 소리가 지금은 미세하지만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온 신경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는 타이치는 설마 했다. 굳어진 얼굴 그대로 야마토와 마주 보고 있을 제 얼굴이 빨개진 건 아닐까. 정말로 붉어져 있을 듯 한 제 얼굴을 떠올리며 야마토가 비웃기도 전에 보지 못하도록 가려보이려고 손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이었다.   

 

 

 "…이거, 좋아한다고."

 

 

 찰랑거리며 그가 흔들어 보이는 통에 안에 든 얼음들이 부딪히면서 들려오는 소리에 들떠 있던 열기와 방금 전까지 제 가슴부근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싸악 사라지고 가라앉은, 마치 깊은 곳에 빠져 한 없이 떨어지기라도 하듯. 무심하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조용해진 소리에 다른 의미로 타이치는 굳어졌다. 제 음료가 든 컵을 보여주며 그가 하는 말에 곰곰이 빠져들 때 쯤, 타이치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

 

 

 아까는 옆에 앉아 있는 야마토가 멋지다고 생각해서 짜증났었는데. 맞다, 그거 이제 내놔. 아, 여기. 그가 가지고 있던 쏟을 뻔 한 라떼를 도로 가져오며 이번에는 조심히 움켜잡아 홀짝였다. 미미하게 식어버린 미지근함이 딱 지금 제 모습인 거 같다는 생각에 타이치는 옆에서 저처럼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을 녀석 몰래 웃어보였다. 기쁨도 아닌, 그렇다고 화가 난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아무런 감정 따위를 보이고 있지 않는 무표정과도 같은 그런 헛웃음이었다. 바보같이. 난 도대체 뭘 생각한 거지. 

 

 조금씩 입에 닿아오는 미지근한 라떼가 오늘은 별로 맛이 없다고 느꼈다. 카페에 오면 늘 찾던 것 중에 하나였는데 오늘은 별로네. 정성스레 만들어줬을 직원 분께는 죄송하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음료가 남을 거 같다. 그리고 남아있을 라떼는 가지고 있던 작은 온기마저도 잃어 점점 차가워지겠지. 아쉬움이 담긴 그의 손길이 들고 있던 라떼를 내려놓았다. 안에 남은 내용물을 바라보는 타이치의 시선이 아주 잠깐이지만, 미세하게 흔들렸다. 왜 그때 자신은,

 

 

 

 손에 있던 컵이 누그러져갔다. 

 

 

 

 

 그 말을 듣고 그렇게 느꼈을까. 안에 든 내용물이 흔들리며 일그러진 컵 모양 그대로 일그러져갔다. 저를 바라보며 마주해오던 푸른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예쁘다고 늘 보면 칭찬했던 푸른빛을 띄운 채 자신을 담았을 때. 그 말을 느낀 그대로 한 치에 망설임도 없이 믿어버린 타이치였다. 왜 나는,

 

 

 

 

 

 

 

 

 기대했던 거지.  

 

 

 

 

 

 

 

 

 

 

 

 

 "……."

 "…하아."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확인하자 검은 눈동자 안으로 시계 바늘이 오후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아직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만 있으면 야자시간 시작으로 곧 교실로 돌아가야 했기에 되도록이면 지금 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오늘 안으로 처리해야 할 일을 끝마쳐야 하는 코시로는 방과 후 시간이라 비어있는 컴퓨터실에 혼자 남아 빠르게 손을 돌리고 있을 터였다. 원래대로라면. 

 

슬쩍 제 옆에 앉아있는 그를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뭐, 본인은 책상 위에 엎드린 채 푹푹- 한숨만 내뱉고 있으니 보일 리 없지만 서도. 심상치 않은 그의 주변 분위기가 굉장히 어둡고 축 늘어져 있어 괜스레 코시로도 조심스러워졌다. 저가 알기로는 이번 주에 큰 시합이 있는 걸로 아는데 오늘은 연습도 없는 걸까 아님 땡땡이를 치는 걸까. 전자 보다는 후자에 가능성이 더 큰 거 같다는 결론뿐인 머리에 코시로는 방금 전 느닷없이 벌컥 문을 열고 컴퓨터실로 들어온 그를 떠올렸다. 아무 말도 없이 찾아온 선배 때문에 적잖게 놀란 코시로는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냉큼 문을 닫고는 제 자리 옆으로 다가와 털썩 주저앉더니 두 팔 사이로 고개를 묻어버린 그는 계속 저 모양이다.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저 완고한 태도 때문에 코시로는 저가 입을 열어도 그가 답을 주지 않을 거라는 걸 그와 오래 지내면서 자연스레 터득한 경험 덕분에 알 수 있었기에 그가 원하는 대로 코시로는 그저 가만히 자기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그것도 얼마 못가, 타닥- 타자를 치던 코시로의 손이 옆에서 계속 들려오는 그의 깊은 한숨 소리에 결국 멈춰버렸지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꽤나 심각한 건지 평소 저가 알고 있는 그라면, 이렇게나 약한 모습을 쉽게 남들 앞에서는 보이지 않을 터인데. 오늘은 유난히 그의 축 늘어진 모습이 신경 쓰여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 코시로는 노트북을 닫아버렸다. 일단은-.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코시로는 그가 고개를 들어 올리도록 헛기침을 해보였다. 사전에 얘기도 없이 저를 찾아온 거 보면 하나지 뭐. 코시로는 부디 그가 앞으로 꺼낼 얘기가 복잡한 문제가 아니기를 빌며 한숨만 쉬고 있는 그에게 적당히 하고 말해보세요. 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좋아한다고.'   

 '뭐?'

 

 

 그래, 그때부터.

 

 

 '…이거, 좋아한다고.'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흔들어 보이던 그 때 그 아이스커피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처음에는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올곧은 푸른 눈동자는 그저 자신이 멋대로 착각한 거뿐이라고 웃어 넘겨 보이며 타이치는 그 짧은 순간 너무나 크게 들려왔던 제 심장소리가 스스로가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워지기만 해 잊으려고 노력했다. 네가 한 말에 설렘을 느꼈다고 한다면. 너는 분명 나를 그 자리에서 비웃었을 테니깐.

 

 그 날…. 지금 생각해 보면 희한하게도 벌써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오르는 기억이 별로 없다. 그 뿐만이 아니라 기억나는 장면조차도 희미하다. 정말 거짓말 안 하고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그날의 기억은 그 때 그 카페 안에 있었던 일이 전부였다. 불과 3일 전 일인데.

 

 

 

 

 

 타이치는 그 날에 있었던 일들이 어떠했는지 세세히는 알지는 못했지만 단지, 이거 하나만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뒤늦게 제 앞에서 흔들어 보이며 아이스커피를 좋아한다는 그의 말을 듣고 저는 가까스로 평정심을 잃지 않은 척을 하며 그래- 하고 떳떳이 대답했다. 그 뒤로는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예상컨대 그와의 주고받는 말 한 마디 대화 없이 빈둥빈둥 시간만 보내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간 거 같다. 왜 그랬냐고, 혹여 누군가가 내게 그리 묻는다면. 그냥… 힘들었다. 평소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와 함께 있을 수도 없었고, 야마토- 하고 그의 이름을 부를 수도, 어깨동무를 하며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해 다가갈 수도 없었다고. 타이치는 그렇게 답해줄 수 있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말 그대로 새하얀 백지상태가 되어 버린 기분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덕분에 새하얀 종이가 되어버린 사고는 너무나 새하얘서 다른 무언가를 가지려고도 하지 않고 배타적인 성질을 띄우며, 다른 색들로 하여금 새하얀 단색이 물들기를 거부하듯 모든 것을 배제해 버린 거 같다. 뭐, 말로는 그럴 듯 하지만 역시 그냥 쉽게 생각해보면 단순히 놀랐다고 타이치는 치부한다. 그가 내뱉은 말 한 마디에 한순간에 바뀐 제 모습을. 두근거리기 시작했던 제 심장소리를. 상기된 제 볼을. 그리고 무언가에 기대하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차근히 그 모든 걸 머리로 분간하여 숙지하자마자 너무 충격 받아서 기억을 못하는 건지 아님 듣지도, 보지도 못한 건지는…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하아-. 몇 번째 일지 모를 한숨만 나왔다. 고개를 묻고 있던 두 팔 사이로 좀 더 파고들었다. 타닥- 하고 들려오던 소리가 잠깐 멈칫하며 움찔하는 게 들린다. 그러고는 다시 머뭇거리며 타닥타닥 들려오는 타자 소리를 들으며 타이치는 눈을 떠보였다. 변함없는 컴컴함에 그거나 이거나 눈을 다시 조용히 감아버리는 타이치였다. 그 때….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은 너무나 당연스럽게도,

 

 

 '좋아해.'

 

 

 고백-. 이라고 생각했다.

 

 

 

 

 으으, 또 얼굴이 화끈거릴 것만 같다. 바보. 왜 그딴 생각뿐이었냐고, 도대체가. 뭘 기대한 거냐고 타이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그런 질문을 하는 자신도 우습고, 황당할 뿐인지라 타이치는 괜히 울상이었다. 그 녀석이… 날 좋아할 리 없는데.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 그런 기적 같은 일이 더군다나 이성이 아닌 동성이라면 동화나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일 보다 더 현실성 없는 꿈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는, 마음 아픈 짝사랑에 불과하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주먹 쥔 그의 손이 희미하게 떨어보였다.

 

 

 

 

 

 

 각오했던 거다. 야마토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깨닫자마자 바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수면 위로 올라온 커다란 애정이라는 이름의 아픔을 타이치는 손에 쥐고 강하게 움켜잡았다. 미리,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타이치는 있는 힘껏 잡아 그것을 숨겨버렸다. 그것은 너무나도 손쉽게 자신을 마음의 병으로 오랜 시간 아파하게 할 수 있었으며, 커다란 고통으로 변질돼 자신의 심장을 망가뜨리게 할 것이었다. 그러니깐 미리. 커다란 아픔이 파도치듯 밀려오는 때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자신이 단 한 번에 파도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조금씩 아파하라는 뜻에서. 타이치는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했다. 

 

 겨우 만나게 된 애정은 타이치에게 있어 썩 반갑지도,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딱 어중간.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없는 자신이, 그저 한순간에 길 잃은 아기 고양이처럼 되어버린 모습이, 차라리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영원히 모르고 지냈더라면-  그가 유일하게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후회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얼굴이 점점 뜨거워져만 갔다.

 

 

 

 

 

 

 정확히 언제부터? 타이치는 그 물음에 입을 열 수 없었다.  

 

 정말로, 정말로 모르니깐.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언제부터 야마토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무엇 때문에 그 녀석에게 이토록 빠져들고 있었는지. 또 한편으로는 이 커다란 마음을 지금까지 어떻게 모르고 지내왔는지 타이치 본인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신기하고 의문만 들었다. 어쩌면 제 심연 속에서 무위식적으로 알아서는 안돼, 하고 꼭꼭 그가 모르게 숨겨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어 타이치는 별 생각을 다한다, 정말- 하고 웃어 넘겨 버렸더라.

 

 피식-. 뜨거워진 제 얼굴을 어루만지는 타이치는 웃어보였다. 자신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는 역시 그때부터다. 우연이라고 들기에는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우연은 우연일 뿐이라고 단정 지으며 특별한 의미가 아닌 단순한 아이스커피를 즐겨마신다는 의미로써의 좋아한다는 그 한 마디를 조용한 주말, 아침을 맞이하는 카페 안 창가에서 네게 들었을 때.

 

 

 어떡하지, 야마토. 나 알아버렸어.

 

 

 

 

 타이치는 저절로 지어지는 슬픈 미소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차오를 거 같았다. 들어오자마자 컴퓨터 책상에 엎어지듯, 고개를 제 팔 사이로 숙이고 있기를 잘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옆에 앉아있는 그가 보기라도 한다면, 아마 코시로라도 모른 척 조용히 넘어가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저가 부탁한다면,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다른 아이들에게는 끝까지 비밀로 알리지 않을 그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코시로가 저를 보며 지을 표정을 쉽게 예상할 수 있어서 타이치는 고개를 저었다. 

 

 왜 우는 거냐고, 혹시 힘든 일이라도 있는 거냐고 말없이 표정만으로 그렇게 물을 그의 얼굴이, 슬픈 표정이, 걱정스러운 시선을 담을 눈동자가 그냥… 보기가 싫었다.

 

 

 

 "흠흠-."

 

 

 가까운 곳에서 잔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보나마나 코시로가 내는 소리다. 타닥타닥 이어지던 소리도 어느새 조용해지고 컴퓨터실 안에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코시로."

 "……네, 타이치 씨."

 

 

 타이치가 고개를 들어주기를 원했던 코시로는 무슨 일로 그가 이리도 축 쳐져있는지 알고 싶어 그의 얼굴을 마주보고, 아니 슬쩍 살펴보기라도 할 생각이었지만 그는 애석하게도 그 자세 그대로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목소리만 내게 들려주었다. 약간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와 코시로는 적잖게 놀란 탓에 엇박자로 뒤늦게 그에게 대답했다. 설마 타이치 씨, 지금….

 

 

 "나…. 어떡하지."

 

 

 이렇게 누군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기대고 싶지도 않은데. 나 지금 너무 힘들고 괴롭다 코시로. 

 

 

 

 

 

 "하나도….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지금 그 녀석을. 그리고 그 녀석이 내게 보이는 행동들을.

 

 

 가져서는 안 될 마음이라는 걸, 현실이라는 큰 장벽이 너무나도 컸기에 애써 모른 척 타이치는 괜찮아- 하고 위로하며 버텨냈다. 그런데 그걸, 기껏 단단히 붙잡고 있던 것들을 녀석은 단 한 마디 말로 매번 타이치를 방해하고, 가볍게 무너뜨렸다. 남은 죽어라 모르는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 보이려고 참고 견디느라 맘고생 중인데 녀석은, 이시다 야마토는 저를 무너뜨리게 만들어 버리는 말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입 밖으로 꺼낼 때마다 타이치는 보기 좋게 농지거리 당했다.  

 

 

 

 

 

 '좋아해.'

 

 

 언제 한 번은 아름다운 붉은 색 노을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올려보다가. 한 번은 큰 시내를 돌아다니다 옆에 있는 작은 꽃집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던 커다란 해바라기를 흘겨보다가. 어제는, 같이 하교하다가. 이어폰을 두 귀에 꽂고 노래를 듣고 있던 네가 무심히 또 그 말을 꺼내면. 마치 스위치가 눌린 것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제 심장은 그 목소리에 반응하여 두근거리기 시작해 점점 소리를 크게 내 보이고, 이어 붉어지려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제 몸은 조건반사적으로 모든 얼굴 근육들을 마비시켰다. 의도치 않은 자기방어로 훌륭하게 굳은 표정 하나만으로 열기를 꼭꼭 숨긴 채로 야가미 타이치는 또 네가 한 말에 설렘을 느낀다. 그리고 마지막은 언제나,

 

 

 '… 이 노래, 듣기 좋거든.'

 

 

 타이치의 갈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며 놀란 눈으로 야마토를 바라보면 너는 한 박자 늦게 좋아한다는 그 무언가를 내게 알려준다. 그럴 때마다 타이치는 항상 마음 속 어딘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없이 깊은, 끝도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같은 곳에 떨어지는 듯한. 그런 허무감. 그리고 찾아오는 실망감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걸, 그는 알고 있을까.  

 

 

 모르겠지. 알면 그게 사람인가.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하는 거라면. …생각하기도 싫다. 야마토가 그런 짓을 할 녀석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타이치는 역시 지금은 그냥 야마토가 밉다. 우연일 뿐이라고 치부했던 것을 어느새 질 나쁜 장난질로 보이게 만들어버린 그가, 너무나 못됐다. 그가 하는 말 하나하나에 실망하고 상처받아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야가미 타이치로 탈 바꿔버린 녀석은 변함없이 평소와 똑같은 모습에 타이치는 억울하고 동시에 화가 났다. 기억해내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돌이켜 떠올리며, 생각만 하면 할수록 열 받는다는 결론뿐인 머리에 타이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퍼붓는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정말로 야가미 타이치는 무너질 거 같았고 한편으로는 그것이 두려웠던 건지도 모른다.

 

 

 

 

 

 "요즘 계속 날 놀리는 녀석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거니와 조금만 아니, 이제는 좋아하는 사람이 내 눈 앞에서 단 한번이라도 좋아한다는 그 말을 내 귀로 똑똑히 듣게 된다면. 정말로 울컥하고 폭발하듯 눈물이 흘러내릴지도 모른다고 타이치는 그만큼 한계라는 벼랑 끝에 몰려있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금방이라도 터질 거 같은 이 감정을, 가라앉히고 싶었다. 억누를 수 있도록. 잠시라도 잊을 수 있도록 타이치는 펑펑 울고 싶었다. 그럴 수 없었음에 타이치는 차라리 그 여름 날 우리들만의 비밀스런 모험을 떠났던 그 시절의 미미쨩이 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제 뜻을 밝히며 엉엉 울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삐지기도 했던 소위 어리광쟁이가 되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멈추게 할 수 있을까…?"

 

 

 

 

 "…많이 힘들어요?"

 "응."

 

 

 많이 힘들어요? 코시로가 묻는다. 평소보다 한 톤 가라앉은 듯한 그의 목소리가 타이치는 왠지 모를 편안함에 빠져들게 해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응, 많이 힘들어. 코시로의 검은 눈동자가 하염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타이치를 바라보다 곧 있으면 저 축 쳐져 있는 어깨가 미세하게 흔들릴 거 같아 저도 모르게 들어 올려진 손을 다시 제자리에 놓으며 코시로는 말한다.

 

 

 "똑같이 되돌려줘요."

 "…."

 "타이치 씨가 당하고만 있을 사람은 아니잖아요."

 

 

 아닌가. 살짝 미소를 머금으며 코시로가 말했다. 어떻게 하면 그가 기운 낼 수 있는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코시로는 고민하다 결국 이리 대답했다. 갚아줘요. 똑같이. 그러면 당신의 속이 조금은 시원해지지 않을까요. 코시로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저 답지 않은 약간은 온건하지 않을 수도 있는 해결책을 그에게 건넸다. 더 나은 해결책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코시로는 잘 알고 있지만, 어쩌면 지금 자신이 온전히 그를 위한다면 지금의 코시로가 그에게 건넨 말이 가장 최선이지 않을까 싶었다.

 

 가만히 있지 말고. 참지 말고. 당한 만큼, 형도 갚아줘요. 

 

 

 

 코시로의 말이 끝나자마자 벌떡 몸을 일으킨 타이치의 얼굴을 그제야 볼 수 있게 된 코시로는 머금고 있던 미소를 잃었다. 어떤 의미로 충격받은 그의 멍한 시선 위로 몽글몽글 맺혀 있는 눈물이 또르르 볼을 타고 내려왔다. 당황한 나머지 코시로가 말을 더듬으며 그의 이름을 부르자 타이치는 제게 뻗고 있던 그의 손을 잡아 보이며 편안한 미소를 보였다. 고마워. 이번에는 코시로가 멍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진짜로… 고마워, 코시로. 너 찾아온 거 진짜 잘한 거 같다."

 "잠…."

 "다음에 내가 맛있는 거라도 쏠게!"

 "타이치 씨!"

 

 

 방금전 까지만 해도 울먹이는 목소리였는데… 끙끙 알던 문제가 저가 한 말로 깔끔하게 해결 된 것인지 평소보다 들뜬 목소리로 바뀐 채 화사하게 웃어 보이며 뛰쳐나간 그의 뒷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코시로의 시선이 이읃고 아직도 그의 온기가 남아있는 제 손으로 향했다.

 

 

 "잘… 한 거겠지."

 

 

 근데 왜 이리도. 희미해지는 그의 온기가 잃고 싶지 않아 주먹 쥔 제 손을 내려보는 검은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려 보였다.

 

 불안…한 걸까.

 

 

 

 

 

 

 

 

  

 

 

 "맞아, 그러면 되는 거였어."

 

 

 너가 하는 걸 나도 하면 되는 것을. 타이치는 헉헉 거리며 옥상으로 뛰고 있던 제 몸뚱아리를 간신히 멈춰 세웠다. 문을 열자 훅 하고 몰려드는 가을 바람이 산산하니 시원하다. 휴- 참고 있던 숨을 내뱉는다. 까짓 거. 나도 한 번 해보면 돼. 시원하지만 곧 붉어지는 제 얼굴을 허둥지둥 가려 보이며 타이치는 장난스럽게 미소 지었다.

 네가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나도 너한테 장난을 빌미사마 말하면 되는거야. 그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나는 이 마음을 털고 고백하면 되는거야.

 

 

 두근두근. 또 시작되는 두근거림. 너는 모를 테지. 몰라야 한다. 나는 그냥 네게 장난하는 것이고. 고백이 아닌 장난을 네게 벌일 것이다. 실컷 놀라서 당황하는 그의 얼굴을 상상하며 타이치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용건은 짧고 강하게. 그에게 메일을 보낸다.

 

 

 

「 좀 만나. 」    

 

 

 얼마 못 가 진동이 울리는 제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는 타이치는 씨익,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아니, 지금은 안돼.

 

 

「 지금? 」

 

 

 일부러 이 열을 식힐려고 옥상 위로 온건데 가라앉을 생각을 안하는 열기 때문에 지금 널 만나면 뭐하나 시작도 못하고 실패할 게 뻔하니깐 지금은 안돼.

 

 

「 전에 갔던 카페에서 봐. 」

 

 

 네가 처음 나한테 장난치던 그 곳에서 봐.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나도 똑같이 네게 보란 듯이 너한테 장난 칠 테니깐. 폴더폰을 접으며 타이치는 고대한다.  

 

 

 

 

 

 

 

 

 

 

 "아, 어서…."

 "라떼랑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요. 아, 아이스에는 시럽 좀 넣어주시구요. 라떼는 펄펄 뜨겁게 해주시면 돼요.'

 "아… 네…."

 

 

 분명 저번 주에도 이렇게 이른 시간에 찾아오신 분들 같으신데…. 워낙 인상 깊은 첫 인상이 남달랐던 손님들인지라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을 보고 반기던 직원은 똑부러지게 음료를 척척 주문하는 타이치를 보고 헙 입을 다물었다. 당황함도 잠시 곧바로 영업미소를 보이며 직원은 얼떨결에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하고 계산을 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직원의 말을 뒤로 하고 전과 똑같은 창가 자리로 옮기는 두 사람을 조심히 지켜보다가 왠지 모르게 그들 사이에서 흐르는 기묘한 분위기에 무슨 일 있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 직원은 전과 같은 주문에 히죽 웃어 보이고는 음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근데 잠깐. 스팀기로 우유를 데우던 손길이 멈칫했다. 시럽은 그렇다치고 그 뒤에 이어지는 그의 말이 왠지 걸린다. 펄펄 뜨겁게……. 혹시, 

 

 

 "전에 급하게 만들었을 때 음료가 미지근했나…."

 

 

 그럴 일은 없을텐데.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를 긁적여 보이는 직원은 오늘은 실수하지 말아야겠다 하고 다짐하며 다시 우유를 데우기 시작했다. 작은 카페 안에서 향미로운 커피 향이 진하게 퍼져 나갔다.

 

 

 

      

 

 

 

 "……."

 "……."

 

 

 음, 일단…. 미쳤지 내가. 타이치는 야마토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며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걸까 하고 후회하며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야마토를 불러내기 전까지는 그를 골려줄 생각 하나만으로 들떠 있었는데 막상 그를 만나고 그 잘생긴 얼굴을 마주하니 요동치는 제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저절로 입이 딱 다물어질 뿐인지라 아까부터 말 한마디 꺼내지도 못하고 있던 타이치였다. 그대로 조용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문을 하고 창가쪽으로 향하니 조용히 자신을 따라오기만 하는 야마토가 있었고 연애감정을 품고 있는 대상이 자신과 가까이 있다는 생각에 타이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보이며 얼굴을 상기시켰다. 푹 빠져도 한참 빠졌구나-. 다소 곤란한 미소를 머금다.

 

 단지 야마토와 함께 있다는 사실 만으로 이렇게 기뻐하고 있는 자신이다. 참으로 바보같고, 낯부끄러워 도저히 예전과 같은 친구 타이치로서 아무렇지 않게 그와 다시 얼굴을 마주하고 말을 걸 용기가 없어서 타이치는 이 모든 걸 후회했다. 지금이라도 이 자리에서 뛰쳐 나가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인데 자신이 불러낸 자리라 이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려 그저 혼란스러울 뿐인 타이치는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상기된 제 얼굴이 들키지 않도록 턱을 괸 채 그가 앉아있는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앉아있는게 다였다. 아무 의미없는 말이라도 해야하나. 조금씩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타이치의 흔들리는 시선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정 안 되면 야마토가 먼저 말을 꺼낼 수도 있었고 하니… 아니 그전에 녀석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힐끔 곁눈질 해 보이는 타이치의 시선 안으로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그가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시선을 제 자리로 돌려놓는 타이치는 생각한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먼저 불러낸 사람이 통 말이 없으니 답답한 얼굴 아니면 인상을 쓰고 있는 얼굴로 자신을 못마땅해 하고 있지 않을까. 타이치는 시간만 갈수록 저만 더 괴로워질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쯤 들려온 목소리에 타이치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저…."

 

 

 막 나온 음료 두 잔을 가지고 온 직원은 창가쪽으로 다가서자마자 싸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말소리도 아까부터 들려오지도 않고… 정말로 싸우기라도 한 걸까 직원이 눈치를 보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두 사람을 바라보자 타이치가 먼저 직원과 마주하며 트레이를 받아들었다. 왠지 모르게 붉은 기가 있는 듯한 그의 얼굴에 한순 직원이 멈칫 해 보였지만 금방 미소로 얼버부리며 넘겨보인 직원이 트레이 위에 있는 아이스커피를 직접 옆에 계신 손님분께 드릴 생각으로 잡아 올리자 타이치가 이를 제지했다.

 

 

 "아, 그건 제가 마실꺼에요."

 

 

 이리주세요. 제 손에 들려 있는 커피를 달라 하는 갈색 머리의 소년에게 직원은 옆에 있는 금발 머리의 손님을 살피며 건네주었다. 직원 못지 않게 다소 놀란 듯 아니 당황한 듯 보이는 남자의 시선이 타이치가 들고 있던 아이스커피를 향해있었다. 그리고 다시 타이치를 바라보는 파란 눈동자가 의문을 담아내는 것이 보이자 직원은 역시 뭔가 좀 이상하다 싶어 얼른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돌려 카운터로 향했다. 다시 둘 만의 공간이 되어 버린 곳에서 야마토가 서서히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타이치를 바라보자 타이치는 애써 그 시린 시선을 모른척 트레이 위에 있던 라떼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네꺼 라는 말과 함께.

 

 

 "…언제 메뉴가 바뀐거냐."

 "원래 내가 마실 거였거든."

 "그러니까, 너 원래 이거 안 마…."

 "내꺼야."

 "……."

 "내꺼라고."

 

 

 그러니 너는 그거나 마셔라. 겨우 말문이 트인 타이치였는데 어째 쌀쌀맞은 거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내 착각일까. 그리고 왠 고집이래. 야마토는 어이가 없었다. 그가 건네는 라떼를 받아들자 보란 듯이 본래 저가 마실 거였던 아이스커피를 시원하게 마셔됐다. 생각해 보니 아까 주문할 때 저를 밀치고 주문하더니 '시럽을 넣어달라'는 말을 했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캐치했어야 했는데 이제야 떠오르는 생각에 야마토는 크게 신경쓰이지 않기로 넘어가고 타이치가 건넨 라떼를 입에 가져다 됐다.

 

 

 "앗 뜨거."

 "풉…."

 

 

 입 안으로 내용물이 들어오자마자 라떼의 그 달달한 맛을 느끼기도 전에 혀가 데일 정도로 뜨거운 온도에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뜨겁다는 말을 뱉어버린 야마토를 보고 웃음이 나와버린 타이치였다. 째릿- 따가운 그의 시선이 느껴져 홱 고개를 돌린 타이치는 '난 모르오' 하고 앉아있으니 야마토는 얼얼한 혀를 살짝 내밀고 이를 지켜보다가 뚜껑을 열어보니 김이 펄펄 나오고 있는 라떼에 괜히 심술이 나버렸다.

 '라떼는 펄펄 뜨겁게 해주시면 돼요.' 이거 노린 거지?

 

 

 한편 킥킥 거리며 웃음이 또 다시 터져 나오려고만 해 타이치는 가까스로 그 웃음들을 억지로 속으로 쑤셔 넣고 있었다. 와- 직원분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로는 모자를 지경이다. 갑자기 커피 하나로 바껴 버린 상황에 타이치는 필요한 순간에 먹혀들었다는 점에 더더욱 신이 나 있었다. 신은 아무래도 제 편인거 같아 마음이 편해진 타이치는 옆에서 뜨거운 라떼를 한 동안 내려보고 있던 그가 그 위로 입김을 불어 식히고 있는 모습을 슬적 훔쳐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즐겁다는 의미로써의 미소를 머금었다. 덕분에 혼란스러웠던 머리도 어느 순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타이치는 일석이조 효과를 똑똑히 보았다. 아니다, 일석삼조인가.

 

 

 "너 말해봐, 이거 먹지 말라고 준 거지. 그렇지?"

 "…글쎄다."

 "야!"

 "꽤 괜찮네. 맛있어."

 "……너 그거 시럽 넣었으면서, 아 몰라 됐어."

 

 

 어이가 없었는지 느닷없이 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조용했던 그가 힘껏 불평을 늘어놓다가 입에 물고 있던 커피스틱을 놓아주며 맛있다고 하는 타이치의 딴 소리에 시럽 넣은거 잊은거냐는 뒷말을 삼키고는 귀찮다는 말로 손사레치며 야마토는 조금은 식은 듯 보이는 라떼를 입 안에 한 모금 마셨다. 아직도 뜨거웠지만 나름대로 아까보다는 먹을 만 해 이번에는 단맛이 입 안 가득히 라떼 향과 함께 퍼져 나갔다. 

 

 

 "……달아."

 "흠…."

   

 

 역시 단 건 제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는 티를 내며 작게 중얼거린 목소리를 용캐 들은건지 타이치는 다시 커피스틱을 입에 물고 힘껏 흡입해 커피를 마셔갔다. 처음에는 시럽 때문에 달달한 맛이 점점 그 힘을 잃고 본래의 아메리카노 특유에 쓴 맛으로 변해갔다. 마지막은 온전히 쓴 맛 뿐인 커피 맛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써 보이는 타이치는 라떼가 달다고 하는 그에게 뜬금없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갑자기 묻고 싶어졌다. 시럽을 넣어서 이 정도인데 도대체 너는 왜 이리도 쓴 걸 자주 마시는 거냐고. 왜 좋아하는 거냐고. 쓴 거 보다는 단 게 더 낫지 않냐고 타이치는 야마토에게 그리 묻고 싶었다.

 

 

 "…야마토."

 "어, 어?"

 "아… 아니다, 아무것도."

 "…그래."

 

 

 딱히 네 취향에 태클 걸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깐. 타이치는 조금은 각오하고 다시 커피를 마셨다. 문뜩 차갑고 쓰기만 한 커피의 향미가 입 안에 퍼지니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 커피… 꼭 마시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거 같다고. 쓴 맛을 입에 머금고 그 향이 서서히 몸 안으로 퍼져 나가면 무언가를 불러 일으키는 듯한, 또는 잠재우는 듯한 그런 느낌. 타이치에게는 전자도 후자도 모두 일어나고 있었다. 후자 쪽으로는 방금 전까지 후끈 달아올랐던 열기가 차가운 커피를 마시면서 서서히 가라앉음을 느꼈고, 전자 쪽으로는 그를 이 곳에서 불러낸 이유를 떠오르게 했다. 자신이 그를 부른 이유. 야가미 타이치가, 이 작은 카페에서 이른 시간 토요일 아침에 이시다 야마토를 만난 이유. 

 

 타이치는 쓰기만 한 제 손 안에 쥐어져 있는 커피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커피를 담은 컵 표면에 맺힌 물방울의 차가운 감촉이 점점 제 열기를 찾을려고만 하는 얼굴과 두근두근 소리를 크게 내 보이려는 심장소리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침착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야,"

 

 

 

 

 장난을 빌미 삼아.

 

 

 

 

 "…좋아해." 

 

 

 

 너는 모르고 나만 알 수 있는…… 그런 고백을, 네게 전할 수 있다. 

 

 

 

 

 "이…."

 "나도 좋아해."

 

 

 두려워 할 필요도 없이 네게………….

 

 

 "좋아해."

 

 

 내 마음을…….

 

 

 

 "진짜 좋아해."

 

 

 전할 수….

 

 

 

 "타이치," 

 

 

 손에 들고 있던 컵이 스르르- 힘없이 풀리는 손아귀에서 떨어져 얼마 남지 않았던 내용물과 얼음이 촤륵 하고 시원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흥건이 쏟아졌다. 이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 타이치를 따라 몸을 일으킨 야마토가 한 발자국 다가서며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는 그의 손목을 잡아 당겼다. 당황한 표정, 조금 상기된 얼굴 그대로 포옥 저항없이 따뜻하다고 느껴지는 그의 품 속으로 기대 듯이 안긴 타이치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 안아 키차이가 별로 나지 않은 덕분에 곧바로 목덜미 쪽으로 고개를 숙여버린 야마토가 말을 이었다.

 

 

 

 

 

 

 

 

 

 "정말 좋아해."

 

 

fin.

 


 

 

 

 

http://blog.naver.com/purpoises/220469788360

출처 ::다음 웹툰 <<아띠아띠>>

 

이거 보고 연성한건데 질질 끌면서 끄적였더니 쓰기가 힘들었다ㅠ 그래도 끝나니깐 기분 좋...*('v'*

갠적으로 이 만화에서 나오는 늑대랑 야마토 넘 어울리는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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